jOURNEY #97
07 (mONDAY)
오늘 비행기와 3D 프린터를 최종 결제했다.
한 번에 200만 원이 빠져나갔지만… 이 선택에 후회는 없다.
어떻게든 해낼 것이다. 난 내가 잘될 사람이란 걸 알고 있다.
아무리 생각해도 여기 남을 이유는 그 친구 하나밖에 없었고,
그 친구 때문에 남는다면, 그건 내가 아니다. 그 친구도 부담만 될 뿐 바라지는 않을 것이다.
오늘 통화를 하며 많은 생각이 들었다. 이 친구는 내가 사람으로서 자기를 좋아하는 걸로
알고 있는 듯하다. 그래서 나도 고민이 됐다. 아, 내가 깨달았던 건 여자로서가 아니라,
사람으로서 좋아하는 걸 단지 여자라는 이유로 이성적으로 좋아한다고 생각하게 된 걸까?
이성으로서 좋아하는 것과 사람으로서 좋아하는 것의 차이는 뭘까?
어쩌면 이 답을 알아내는 게 이번 생의 내 카르마일까?
다음 주면 이 친구와의 연락도 끊길 것이다. 아직도 울컥하네… 왜 이럴까, 진짜.
08 (tUESDAY)
한국에 가는 게 맞다.
내일 친구를 마지막으로 만나는데, 내가 해야 할 얘기들을
하는 게 맞을까… 난 아직 사람으로서 좋아함과 이성으로서 좋아함을 구분 짓지 못하겠다.
대체 뭘까? 좋아한다면 좋아하는 거 아닌가… 둘의 차이를 둬야 하나?
모르겠다… 내일 어떻게든 되지 않을까? 난 정말로 이 친구가 그리울 것 같다.
내일 내가 눈물을 안 흘리면 다행이다. 이렇게 쓰기만 해도 눈물이 나오는데…
지금 떠나면 더 빠를지도 모르겠지만… 5년이다. 내가 결정한 일이고, 이 친구도 이미 눈치를 챘다.
그리고 서운하지도 않고… 그러는 게 맞다고 생각한다고 얘기해 줬다.
5년… 아니면 이게 영영 마지막일 수도 있다. 상상도 못 할 일이다.
내가 한 사람에게 이렇게까지 된 적은 없다. 아직도 설레지 않는다. 그건 명확하다.
하지만, 하지만 내가 느끼는 이건 대체 뭘까? 하… 오늘이 빨리 지나가고 내일이 왔으면 좋겠다.
아니, 오늘이 지나가지 않고 내일이 오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냥 이 흐름 속에 갇혀 있고 싶다.
09 (wEDNESDAY)
10일 아침이지만… 어제 느꼈던 감정들, 순간들을 밤이 되면 무뎌질까… 10일 아침에 쓴다.
아침부터 시간이 멈췄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면서도, 빠르게 지나가서 친구의 얼굴을 보고 싶었다.
빨리 보고 싶어서… 일찍 나왔지만 버스는 예상 시간보다 빨리 와서 놓쳤고, 가는 길엔 변수가 생겨서
약속 시간 정시에 도착했다. 그 친구가 환한 미소로 반겨 주었다. 머리는 포니테일이었지만 참 잘 어울렸다.
장소도, 날씨도, 함께 먹은 피시앤칩스도 이번에도 참 완벽했다. 우리는 또 걷고 얘기를 나누며 즐겁게 보냈다.
그리고 우린 서로 감정에 대해 얘기했다. 사실 어떻게 꺼내야 할지 몰랐지만, 그 친구가 자연스럽게 꺼내 줬다.
난 준비한 말들을 했다. 그 친구는 오히려 그 말에 허들이 생겼다고 했지만… 했어야만 했다.
중간마다 자꾸 울컥해서… 민망했다. 사람을 진짜 좋아한다는 건 이런 거구나… 라는 걸 느끼기도 했다.
28년… 진정한 의미의 첫사랑을 찾은 것 같다.
그 친구가 준비해 준 머리띠를 끼고 돌아다녔다. 뭐… 멋은 없었지만, 그 친구가 행복하다면야, 라는 생각이었다.
마지막 버스, 스카이트레인에서 벗은 게 지금 와서 보니 뭔가 좀 아쉽다. 하루 마지막까지는 해 줄 수 있는
쉬운 일이었는데… 전해 주기로 한 USB와 내 블로그 주소를 전해 줬다. 그 친구가 내 일기를 볼 수 있다 해도
여기에 거짓말을 적지는 않을 것이다. 그리고 그 친구는 내게 편지를 줬다.
마지막으로 짧은 포옹을 하고 우린 각자 갈 길을 갔다. 좀 더 길게 할걸… 마지막에 투정을 부린 내가 멋이 없다.
집에 오는 길, 연락을 한국에서도 이어 나가야 할까… 다시 고민을 하기 시작했고, 흐름을 따르기로 했다.
그 친구에게 역시 흐름을 따라가자고 다시 얘기했다. 미련이 아직 많이 남은 나를 볼 수 있었다.
집에 와서 그 친구가 준 편지를 읽고 다시 눈물이 났고, 오늘 아침 일어나서 그 편지를 봐서 또 눈물이 났다.
지금 이 일기를 쓰는 데도 눈물이 난다. 지칠 줄을 모른다. 그냥 이런 생각을 하고 있다.
만약 오늘 한 번 더, 가기 전에 한 번이라도 더 얼굴을 보고 얘기를 해 줄 수 있게 해 준다면
난 하나님을 믿겠다고.
그럼 난 운명이라고 부르지 않고, 하나님이라 부르며 믿고 따르겠다고.
10 (tHURSDAY)
아침에 그렇게 일기를 쓴 다음, 할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그래서 무작정 다운타운으로 향했다. 혹시나 하나님이 내 말을 들어줄까 하고…
하나님은 내 말을 들어주지 않았다. 친구는 평소 잘 가던 도서관도, 목요일은 유독 몸이 피곤하다며
오늘은 안 가고 집에 있었다고 한다. 혼자 예전에 일했던 마켓과 노스 밴쿠버에 다녀왔다.
출발할 땐 비가 많이 내렸지만, 도착 뒤엔 비가 귀신같이 그치고 햇빛이 나를 맞아주었다.
노스 밴쿠버에서 커피 한 잔을 마시며 친구가 좋아했던 장소로 갔고, 추천해줬던 클래식을 들었다.
정말 좋았다. 그리고 내려와서 바다를 30분… 40분 멍하니 바라보았다. 눈물은 계속 나왔다.
시작부터 멍 때리는 시간까지… 옆에 어떤 남자가 와서 갑자기 기타를 치는 데, 나를 위로해 주는 듯했다.
그 기타 소리에 집중하며 눈물을 멈췄고, 다시 밴쿠버로 향했다. 혹시나 친구가 나올까…
한 자리에서 앨범을 다 들으며 멍을 때렸다. 하지만 역시 나오지 않았고, 난 그렇게 집을 향했다.
집으로 가는 길, 많은 생각들을 했다.
‘꼴리는 대로 살아야겠다. 좋은 사람이고 나쁜 사람이고, 꼴리는 대로 살면
그게 내 모습일 거다. 물질적이고 계산적으로 사람을 구별할 것이다.
하나님은 없다. 웃지 않을 것이다. 예전의 나로 다시 돌아갈 것이다.’
이런 생각들을 하며 집으로 향했다. 오로지 돈만을 보고 살 것이며,
감성적인 내 모습은 이제 아예 지우고 강한 규율을 만들어, 그 규율 속에서 이기적으로 살 것이라고.
그리고 집에 들어가기 전, 공원에서도 역시 똑같은 생각을 하며 정처 없이 걷기만 했다.
그렇게 생각들을 정리하며, 이 친구를 내 마음속에서 놔줬다. 그리고 또 걷기만을 반복했다.
지쳐서 벤치에 앉아 생각을 했다. 이상하게 운명이 아닌 하나님에 대해 얘기하게 됐다.
하나님은 존재하는구나… 그냥 이번에 그 친구를 못 보게 한 건 뜻이 있겠구나 싶었다.
아마 봤다면… 난 지금 이 일기를 쓰면서도 울컥했을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지금은 울컥하지 않는다. 내 마음을 다잡기 위해 그러신 게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또 앉아 있는 동안 여러 가지 생각이 바뀌었다.
‘나를 위해 이기적으로 계산적으로 살겠다는 게 아닌, 그냥 그 친구가 내게 원하던 대로 살자.’
그래서 결정했다.
그 친구가 원하는 대로 연락을 하고… 멀어진다면 자연스럽게 멀어질 것이고,
난 꿈을 이룰 것이고, 잘 웃을 것이고, 마음을 열어 놓고, 좋은 사람으로… 좋은 사람으로 남을 거다.
다음 업그레이드 버전의 사람이 오기까지, 이 친구의 바람대로 살려고 한다.
그리고 한국으로 돌아가면… 성경을 한 번 읽어보려고 한다.
왜 내가 갑자기 하나님이 있다고 생각을 하게 됐는지…
11 (fRIDAY)
어제 밤에 또 통화를 했다. 그 친구는 내가 나로서 나를 사랑하며 살기를 바랬다.
나는 나로서 살아가려고 한다. 어제 내 일기도 봤다고 했으며, 뭐 사실 내가 봐도 상관 없다고 했다.
아마 이제 내 일기를 안 볼 확률이 크다고 생각하기도 하고, 난 이 일기에 거짓을 적을 생각도 없다.
어제 그 친구에게 이런 얘기를 들었다. 자신은 나를 끊을 자신이 없으니 자기를 대신해 나를 끊어달라고 하나님께 빌었다고…
통화 땐 별생각이 없었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니까… 참 마음이 그렇다.
물론 그 친구의 입장도 이해가 가고… 내가 잘못된 것도 알지만 뭔가 지워지지 않을 것 같다.
음… 지워지지 않을 것 같다… 응… 지워지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다음에 바로 내가 한국에 간다고 연락이 왔다고 했다.
그 친구의 기도가 이뤄진 것이다. 그 친구는 마음의 안정을 찾았을까? 찾았을 것이다.
보통 기도를 한다는 건 그걸 바란다는 것이고, 그게 이뤄진다면 기쁜 일이 되는 것이니까.
앞으로 몇 달, 몇 년은 내 마음의 문이 열리는 일은 없을 것 같다. 뭐 다른 거 아니다.
다시 예전의 나로 돌아가는 것뿐이다.
혼자 즐기고, 돌아다니며, 운명일지 하나님일지 모르겠지만… 그들에게 의지하며, 내가 좋아하는 일을 그냥 하는 삶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다시 누군가를 통해서가 아닌 내가 나를 관찰할 것이며, 예전과 똑같이 남에게 의지하며 푸는 것이 아닌 하늘과 나로서 내 삶을 관철할 것이다.
이게 내가 지금의 나를 있게 해준 방식이다. 그리고 이게 내가 예전에 생각한 멋있는 사람이다.
이와 동시에 나 역시 이 친구가 이젠 궁금하지 않아졌고, 아마 어제를 마지막으로 깊은 대화를 나눌 일은 없을 것 같다.
그저 의미 없는 일상 대화를 하다 보면 아마 서로 자연스레 멀어지겠지.
누군가에게 호기심을 갖는 것, 이것 자체도 욕심이 아닐까? 내려놓기로 했다.
웃어야 행복하다고 내게 말해줬지만, 내게 있어서 행복은 행복이라는 생각조차 떠오르지 않을 정도로 몰입시키는 것이다.
흠…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친구는 영원히 기억 속에 남을 것이다. 많은 걸 깨닫게 해준 친구이고 첫사랑이니까.
그리고 뭐… 서로 안부 정도는 간단하게 묻고 하기로도 했으니까, 영원한 이별도 아니라고 생각도 한다.
내가 미래에 결혼을 한다면 이 여정을 보여줄 수 있을 것 같지는 않다.
저녁엔 그 친구와 누나가 만나 서로의 생일을 축하했고, 친구가 2차에 오지 않겠느냐 제안을 해줬지만 거절했다.
가고 싶지 않았다. 술을 좋아하지도 않고, 3인 이상은 여전히 싫어한다. 그리고 그럴 기분은 아니었다.
마지막으로 물어보고 싶다. 저때의 마음이 어땠냐고… 안심이 됐다면 난 아마 친구로도 부르지 못할 것 같다.
이걸로 내 밴쿠버 생활은 마무리됐다. 1년 6개월간의 여정이었고, 좋은 일도 나쁜 일도 많았다.
잊지 않을 것이고, 그리울 것 같다. 아무래도 난 도시보다는 공원이 많고 자연을 선호하는 것 같다.
이것 역시 이 친구를 통해 깨닫게 됐다. 잠을 자고 일어나면 내일 출국이네.
해서 이번 주의 일기는 이걸로 마무리!
00 (mONDAY)
00 (tUESDAY)
00 (wEDNESDAY)
00 (tHURSDAY)
00 (fRIDAY)
00 (sATURDAY)
00. (sUND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