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OURNEY #96
31.March (월요일)
3월의 마지막, 신기하게도 누나와 친구의 생일이 똑같았다.
친구는 저녁에 약속이 있어서 점심에 만났고, 언제나 그렇듯 산책으로 시작을 했다.
가는 길, 비가 갑자기 쏟아져 강제로 샤워를 하고, 날씨가 계속 안 좋을까 봐 걱정했지만,
다행히 만나기로 한 곳 날씨는 완벽했었고, 레스토랑까지 가는 길 역시 군더더기 하나 없었다.
레스토랑에서 그 친구에게 편지와 미리 제작해 놓은 선물을 줬고, 그 친구가 좋아하는 모습에 나도 함께 행복했다.
가끔 우리가 미래에 대해 얘기할 때, 내가 이곳을 떠난다고 얘기할 때마다 난 울컥했었다.
그리고 그때마다 크게 들이쉬고 내뱉었다. 밥을 다 먹고 그랜빌 아일랜드로 향하는 길 역시 아름다웠다.
함께 있는 그 순간이 좋았다.
완벽한 바람과 햇빛, 향, 소리, 그 친구의 존재… 그 순간에만 존재할 수 있던 것들은 날 그 순간 속에 머물 수 있도록 해주었다.
내가 그토록 바라던 것이 이뤄졌다. 당시의 순간을, 그 하루를 행복하게 느끼고 즐기는 삶을 앞으로도 느낄 수 있을까?
그 친구의 추천으로 먹은 블루베리 타르트, 조용한 곳 벤치에 앉아 바다와 풍경을 보며 서로 얘기를 하는 건 참 재밌는 일이었다.
시간은 빠르게 흘러갔고, 그 친구는 다음 약속을 향했다.
난 누나를 위해 생일 케이크와 꽃을 준비했고, 누나 역시 좋아했다.
아이스크림 케이크라 오는 길에 녹았지만… 그래도 좋아하고 잘 먹어주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그리고 한 시간, 누나와 대화를 나눴다.
우리 사이는 좀 틀어져 있었지만, 친구의 의견에 따라 난 이 사이를 풀기로 했고,
내가 한국에 가려는 이유에 대해 설명해 줬다.
그렇게 하루는 끝이 났다.
01.aPRIL(tUESDAY)
4월 1일, 누나와 나는 이사를 완벽하게 끝냈다.
날씨가 너무 좋았고, 이런 날엔 잉글리시 베이를 마지막으로 보고 싶었다.
그것도 그렇지만… 사실 친구도 점심에 다운타운에 약속이 있었고, 그냥 사실 흠…
같이 산책을 하고 싶었다. 그래서 난 누나와의 이사가 늦어질수록 좀 다급해졌었다.
빨리 끝내고 다운타운 가고 싶은데..! 하면서
뭔가 다행히도? 그 친구 역시 모임이 생각보다 늦게 끝났고, 타이밍이 맞았었다.
그렇게 난 그 친구에게 같이 산책을 하자고 말하였고, 그 친구도 응했다.
사실 이틀 연속으로 보는 건 부담이 되지 않을까? 고민을 했었지만 그냥 지른 거였다.
그 친구도 뭔가… 내가 날씨가 좋으면 나갈 거라고 다짐을 했었는데, 모임이 끝나고
짧은 말들과 함께 마지막에 “날씨가 너무 좋다”라고 온 문자는 의도가… 있지 않았을까?
뭐… 내가 괜히 의미를 부여한 것 같기도 하고, 이런 예상은 항상 틀리기 때문에…
만났을 때 표정은 좋지 않았다. 굉장히 피곤해 보였고, 지친 모습인데… 그런 모습을 본 건 두 번째다.
어쨌든, 그렇게 피곤하고 힘듦에도 만나 준 그 친구에게 미안하기도 했고, 너무 고맙기도 했다.
함께 잉글리시 베이에 도착해 좋은 곳에 나란히 앉아 멍을 때리기도, 얘기를 나누기도 하였다.
날씨가 쌀쌀해졌고, 그 친구는 내일 있을 여행에 대비해 짐을 싸야 해서 우리는 집을 향했다.
사실 오늘은 좀 내 모습 자체가 불편했다. 친구가 애인에게서 온 문자에 흐뭇해하는 모습과
나에게 반말은 하면서도 평소보다 ‘~씨’라고 더 많이 불렀는데, 그 말은 더욱 선을 확실히 긋는 모습처럼 느껴졌다.
그렇다. 이제서야 알게 된 건, 설레지 않더라도 좋아한다는 감정은 있을 수 있다는 것이었다.
어쩌면 난 설레지 않는다는 내 느낌을 핑계로, 이 친구를 좋아한다는 것을 부정하고 있던 것이다.
집으로 향하는 길, 난 애처럼 굴기 시작했고 전혀 나답지 않았었다. 스카이트레인에서도…
그냥 뭔가 내 자신이 불편했다. 핸드크림을 발라준다는 말에도 원했지만 애써 거절을 했고, 그건 내 나름의 선이었다.
집에 혼자 걸어가는 길, 많은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그리고 한국행이 정해진 후, 내가 이 친구를 못 본다는 생각에 아직도, 지금도 울컥하거나 눈물이 핑 돈다.
전에 트윈 소울, 트윈 플레임은 쓸모없는 거라고 단정을 지은 적이 있다.
근데 이제 와서야 느낀 건, 그때 느낀 게 맞는 것 같다. 난 인생에 이런 적이 한 번도 없었다.
뭐… 언젠가, 다음 만남을 마지막으로 정말 이 친구와 내게 운명이란 게 있다면 또 볼 날이 오지 않을까…?
한국에 돌아가면 연락을 끊자고 말을 할 생각이다.
다시 돌아왔을 때, 내가 어떠한 말과 행동을 해도 아무런 제약이 걸리지 않을 때 연락을 달라고…
나도 아마 많은 사람을 만날 것이지만, 하나 알 수 있는 건
이 친구 이상으로 잘 맞는 사람은 없을 것이란 거다.
02.(wEDNESDAY)
아침부터 마음이 좋지 않았다. 어제 각자 집으로 돌아간 후 이 친구에게서 연락이 없던 탓일까?
뭐가 문제인지 몰랐었다. 내가 어제 느낀 불편함 때문일까? 이 친구는 불편하지 않았었나…?
사람이란 게 참 그렇다… 내가 한국에 가면 이 친구와 연락을 끊고 살 수 있을까?
불가능하지 않을까… 이게 트윈 플레임에서 말하는 분리 기간일까? 난 영적으로 더 성장할 수 있을까?
그냥 더는 내 감정을 회피하지 않기로 했다. 그리고 그냥 마음이 불편하다고 말을 하였다.
뭔지 모르겠다고…
그러자 1시간 뒤에 전화가 왔고, 이 친구는 내 마음의 일부를 풀어주었다. 나머지는 내 몫이었다.
이 남은 불편함은 내가 다음 만남에서 말해야 할 것들에 대한 불편함일 것이다.
그리고 말하지 않는다면 난 아마 후회를 남길 수도 있다.
이 불편함은 내가 그 친구를 배려하지 않게 될 것 같은 탓에 생긴 불편함일 가능성도 있겠구나 싶다…
아니면 얘기를 그냥 마음속에 묻어두어야 할까…?
아니면 양해를 먼저 구하고 얘기하는 게 맞을까…?
모르겠다…
03. (tHURSDAY)
지인과 액세서리에 관한 대화를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나눴다.
내 지향점과 다르지만, 그 지인이 원하는 것도 나름 경쟁력이 있어 보였다.
해서 난 동의를 했고, 좀 더 간단하고 귀여운 디자인을 위주로 만들기로 했다.
내 건 그 후에 해도 된다. 한국으로 돈을 보내는 데 올 때랑 다를 게 없다…
아마 밴쿠버로 와서 4달 아무것도 안 해 나가는 돈이 너무 컸던 것 같다.
아마 한국으로 돌아가면 우선 일을 찾고 3D 프린터도 사고 해야 한다.
할 게 많아서 머리가 아파오지만… 해야만 한다.
뭔가 내세울 것이 있어야, 내 말에도 신빙성이 생기는 것이다.
어떻게 보면 난 증명을 해 보이고 싶은 게 아닐까?
어쨌든, 내일은 Tom 아저씨와 John 아저씨를 마지막으로 보기로 했다.
사실 만날 생각은 없었는데… 누나한테 생각해 보겠다고 말했는데 누나가 그냥
나를 포함해서 약속을 잡아버렸다… 좀 당황스러웠고 지금 역시 할 일이 많아서
가고 싶지 않지만… 아… 가고 싶지 않다. 그냥 집에서 여러 작업들이나 하고 싶다.
좋아하는 사람들이지만, 그냥 집에서 작업을 하는 게 더 이로울 것 같다.
04. (fRIDAY)
어제 얘기한 모임에 다녀왔다.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모였었다.
사실 크리스마스 마켓 하면서 만난 사장님들이 다 나왔다.
여러 가지 비밀 얘기들도 있었고, 모두가 줄리아 누나를 좋게 보지 않고 있었다.
뭐… 나랑은 관련이 없는 얘기고, 사실 손절을 당해서 굳이 신경 쓰고 싶지 않다.
근데 얘기를 들을수록 우리 누나가 참 많이 이용당했구나 싶기도 하다.
어쨌든, 좋은 사장님들과 만나서 점심을 먹고 집으로 왔다.
구내염이 입 안에 완전히 퍼져서, 양치할 때 너무 고통스럽다… 매일 눈물 쏟는 중.
금연이 원인이라고… 그래서 난 뭔가 한국 가서 필 것 같은 느낌이라 오늘 담배를 다시 샀다.
아직 이 구내염을 이길 동기는 나에게 없었다. 그래서 피웠는데! 생각보다 별로였다.
다시 폈을 때, 뭔가 얼마나 좋을까! 했지만 별 느낌이 없었고, 집에 와서 저녁을 먹고
하나 더 피웠는데 진짜 그냥 “이걸 왜 피지…”라는 생각이 들었었다.
그래서 구내염 그냥 버티자… 라는 마음과 함께 누나가 담배를 지인에게 팔아준다고 하길래
누나에게 넘겼다. 니코틴 껌도 생각했지만, 뭐 이래저래 귀찮기도 해서… 안 피우려고 한다.
담배 피는 게 끊는 사람보다 멋있다고 생각하고 있긴 하지만… 뭐… 언제든 다시 필 수도 있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완전 끊기를 원한다면… 아마 그땐 다시 핀다는 가정 자체도 없지 않을까?
오늘 밤은 구름이 없었으면 좋겠다. 친구가 오로라를 보러 갔는데, 어제는 구름에 가려져 못 봤다고 한다.
그 친구와 카톡을 하다 보면 신기하게 어떤 표정인지, 그 친구의 감정이 머릿속에 고이 그려진다.
그래서 그런가… 어떤 좋은 일이 그 친구에게 생기고 내게 표현을 해줬을 땐 미소가 지어진다.
오늘 가려지지 않은 아름다운 오로라를 보고, 그 친구가 행복에 젖었으면…
그리고 활짝 웃어줬으면 좋겠다.
05. (sATURDAY)
요즘 계속 늦잠을 잔다… 운동도 못 하고… 사실 한국에 갈 거면 빨리 가고 싶다.
사실 가격이 다 똑같아서 내일이라도 바로 타고 갈 수도 있지만… 가기 전에
친구랑 더 놀고 싶다… 두 번 더 노는 건 내 욕심이겠지…
이 친구랑 대화하다 보니, 난 왜 혼자서는 뭘 구경하든 순식간에 보고 나오는 이유를 알 것 같다.
그리고 내가 왜 좋아하는 사람과 무언가를 함께하고 싶은지도 알 것 같다.
물론 상대방이 좋아라 하면 나도 좋지만, 무엇보다 난 그때 그 순간을 함께 느끼고 감정을
공유하며 얘기하고 싶은 것이라는 걸 알게 됐다. 혼자 가면 그런 것이 없으니…
흥미롭게 가도 막상 가면 지루함을 느꼈던 것 같다.
이 친구 얘기를 너무 일기에 많이 써서 좀 그렇긴 하네… 그래도 요즘은 이런 생각들뿐이니까…
06. (sUNDAY)
결국 담배를 다시 피기 시작했다. 내 입이 너무… 힘들다.
양치할 때마다 눈물을 얼마나 흘리는지 모르겠다… 너무 아프다…
일주일이야 버텼지만, 이제는 무리다. 한 번 실험을 해보려고 폈다.
핑계일 수도 있겠지만… 차라리 이 고통들이 담배로 인해 사라졌으면 좋겠다.
안 사라진다면… 난 진짜 병원을 가야 하고, 이건 큰 병일 수도 있다.
차라리 사라지면 금단 증상으로 알겠고, 다음을 대비할 수도 있지만… 제발 사라져주세요…
다행히 그 누구와도 “금연할 거야!” 하고 단언도 하지 않고, 약속을 하지 않았다.
그냥 끊어본다고 말만 했지… 뭐 전에도 말했듯, 난 담배 피는 멋이 있다고 생각하기도 하고
아마 누군가와 내가 약속을 하는 거 아닌 이상, 끊을 일은 없을 것 같다.
근데 뭔가 친구한테 쉽다~ 고 말했는데 이렇게 또 피게 되니 괜히 마음이 좋지 않다.
뭔가 실망을 준 것 같고..
내가 이 친구를 신경 쓸 이유가 없는데 아..
잘 보이고 싶나 보다.